티에디션5

대자보를 찢는 행위가 가지는 의미가 단순히 종이 한장을 찢는 것의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본인의 생각과는 맞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대자보를 찢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일입니다.

대자보에 관한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할 때, '대자보를 붙일 권리가 있다면 그것을 보지 않을 권리도 있다'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그 역시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본인이 보고 싶지 않다고 해서 남들까지 그것을 보지 못하도록 하는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본인의 눈에 거슬린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생각이 담긴 대자보를 아예 찢어버리는 것, 그것은 권리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폭력이며 억압입니다. 대자보가 본인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을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반박대자보를 붙여 본인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올바른 방법입니다.

올해 문과대 학생회에서 진행했던 '5.18 사진전' 역시 일베 회원에 의해 훼손된 적이 있습니다. 비상식적인 일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충격에 빠졌지만, 일베에서는 '베스트'에 올라갔습니다. 이번에 저의 대자보 역시 대자보 훼손에 대해 많은 학우들이 분노했지만, 일베에서는 또 '베스트'에 올라갔습니다. 고려대 대자보 훼손을 기폭제로 해서 전국 각지의 대학에서 '대자보 훼손 인증샷'이 올라오고 있는 것을 보니, 어느새 대자보 훼손이 일베 안에서 하나의 문화로 잡혀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문화가 계속 된다면 학우들은 앞으로 대자보 하나를 붙이더라도, 언제 떼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학우들의 목소리들이 하나둘씩 막혀가는 모습은 상상만해도 답답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법적 대응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사건 이후에 많은 분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받았습니다. 아는 사이가 아닌데도 따로 메세지로 힘내라고 해주시는 분들과, 또 어떻게든 돕고 싶다고 해주셨던 분들, 전부 감사합니다. 큰 힘이 됐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걱정해주시는 것만큼 그렇게 '멘탈붕괴'되고, 힘빠져있는 상태는 아닙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ㅎㅎ

다시 한번 걱정해주신 학우분들께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학내에 있는 여러 대자보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남은 시험 전부 대박나시고 행복한 방학 보내세요~!!